RSS

To Mine or Not To Mine: 독일 법원이 AI 시대의 저작권 딜레마에 내린 판결

이 글은 JBB Rechtsanwält:innen의 블로그 포스트 “To Mine or Not To Mine”(https://jbb.de/to-mine-or-not-to-mine/)를 기반으로 작성하였으며,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에 관한 최근 독일 법원의 판결을 설명하고 관련 지식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개합니다.

단, 저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며, 이 내용은 법적인 근거가 될 수 없음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이선스 및 법적 문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배경

2021년, 독일의 사진작가 로버트 크네슈케(Robert Kneschke)는 자신의 사진이 LAION(Large-scale Artificial Intelligence Open Network)이라는 비영리 단체가 만든 AI 학습용 데이터셋에 무단으로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AI 학습용 데이터셋이란 인공지능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대규모 데이터 모음을 말합니다. ‘LAION-5B‘라는 데이터셋은 약 58억 개의 이미지와 그에 해당하는 설명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셋은 AI가 이미지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CommonCrawl

이 사건의 핵심에는 ‘CommonCrawl‘이라는 비영리 조직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CommonCrawl은 정기적으로 인터넷의 ‘백업’ 또는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이들은 링크를 통해 접근 가능한 모든 웹페이지를 텍스트 형태로 복제합니다.

  • CommonCrawl의 데이터 수집 방식:
    1. 웹페이지의 텍스트 내용을 복제합니다.
    2. 이미지, 비디오 등 비텍스트 데이터는 직접 저장하지 않습니다.
    3. 대신 이러한 콘텐츠에 대한 링크를 포함한 웹페이지의 소스 코드를 저장합니다.

CommonCrawl은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셋을 자체 웹사이트에서 제공합니다. 이 데이터셋은 웹페이지의 ‘소스 코드’를 포함하고 있어, 연구자들이 인터넷의 구조와 내용을 분석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LAION의 데이터 처리 과정

LAION은 CommonCrawl이 제공하는 이 데이터셋을 활용하여 자체적인 이미지 데이터셋을 생성했습니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CommonCrawl 데이터셋에서 이미지 링크 추출: LAION은 CommonCrawl 데이터에서 이미지 파일에 대한 링크만을 필터링했습니다.

  2. 추가 정보 수집: LAION은 단순히 이미지 링크만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이미지에 대한 추가 정보도 수집하고자 했습니다. 이 추가 정보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 이미지 설명
    • 워터마크 유무
    • 청소년 유해 콘텐츠 포함 여부
  3. 이미지 다운로드 및 분석: 이러한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LAION은 수집한 링크를 통해 실제 이미지를 다운로드하고, 자체 개발한 AI 모델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분석했습니다.

  4. 데이터셋 구성: 최종적으로 LAION이 만든 데이터셋은 일종의 표 형태로, 각 행에는 이미지 링크와 해당 이미지에 대한 추가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LAION은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 이미지 데이터셋을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는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크네슈케는 자신의 사진이 포함된 웹사이트의 이용약관에 자동화된 콘텐츠 다운로드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LAION이 자신의 사진을 무단으로 다운로드하고 분석한 것이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LAION은 자신들의 활동이 과학 연구 목적의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에 해당하므로 저작권법 제60d조에 따라 허용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사건은 AI 시대에 데이터 수집과 저작권 보호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법적,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소송의 시작

2023년 4월 27일, 크네슈케는 함부르크 지방법원에 LAION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저작권 침해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크네슈케는 자신의 사진이 허락 없이 사용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데이터셋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제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AI 시대에 창작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법적 쟁점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 예외 규정의 적용 범위: TDM 예외 규정이란 저작권법에서 특정 조건 하에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말합니다. 이는 연구나 기술 발전을 위해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적용됩니다. 이 소송에서는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셋 생성이 이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 목적으로 웹사이트의 텍스트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인지, 아니면 이 예외에 해당하여 허용되는지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2. 비상업적 과학 연구 목적의 정의: LAION이 주장하는 ‘비상업적 과학 연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이에 해당하는지가 논점이었습니다.
  3. 저작권자의 ‘opt-out’ 권리의 유효성: ‘Opt-out’이란 저작권자가 자신의 작품이 TDM에 사용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수 있고, 어떤 형태의 거부 의사 표시가 유효한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EU 저작권 지침의 영향

2019년 EU는 디지털 단일 시장 저작권 지침(DSM Directive)을 채택했고, 이는 2021년 6월 7일부터 EU 회원국들에서 시행되었습니다. 이 지침은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에 대한 두 가지 예외 규정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1. 과학 연구 목적의 TDM (제3조)
    • 대상: 연구 기관 및 문화유산 기관에만 적용됩니다.
    • 목적: 오직 과학 연구를 위한 목적으로만 허용됩니다.
    • 권한: 저작권자의 사전 허가가 필요 없으며, 어떤 형태의 보상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 접근 조건: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에만 적용됩니다(예: 구독, 라이선스, 온라인 무료 콘텐츠 등)
    • 제한: 민간 기업의 결정적인 영향력 하에 있는 기관은 제외됩니다.
  2. 일반적 목적의 TDM (제4조)
    • 대상: 모든 개인이나 단체에 적용됩니다.
    • 목적: 모든 목적(상업적 목적 포함)의 TDM에 적용됩니다.
    • 권한: 저작권자가 명시적으로 권리를 유보하지 않은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 접근 조건: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에만 적용됩니다.
      • Opt-out 메커니즘: 저작권자는 ‘적절한 방식’으로 권리를 유보할 수 있습니다(예: 온라인 콘텐츠의 경우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식).
    • 데이터 보관: TDM 목적으로 복제물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이 지침을 국내법에 반영하여 저작권법을 다음과 같이 개정했습니다:

  • 제44b조: 일반적 목적의 TDM에 대한 예외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이 조항은 상업적 목적을 포함한 모든 목적의 TDM을 허용하지만, 저작권자가 명시적으로 거부(opt-out)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합니다.
  • 제60d조: 과학 연구 목적의 TDM에 대한 기존 예외 규정을 확대했습니다. 이 조항은 비상업적 과학 연구 목적의 TDM에 대해 더 넓은 자유를 부여하며, 저작권자의 opt-out 권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판결

2024년 9월 27일, 함부르크 지방법원은 LAION의 행위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주요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LAION의 데이터셋 생성 활동은 독일 저작권법 제60d조에 따른 비상업적 과학 연구 목적의 TDM에 해당한다.
  2. LAION이 상업 기업과 협력 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비상업적 성격이 부정되지 않는다.
  3. 웹사이트 이용약관에 명시된 자연어로 된 TDM 금지 문구도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식’의 opt-out으로 간주될 수 있다

판결의 의의

  1. TDM 예외 규정의 광범위한 해석:
    • 법원은 LAION의 이미지 데이터셋 구축 활동을 비상업적 과학 연구 목적의 TDM으로 인정했습니다.
    • 이는 AI 학습 데이터셋 구축과 같은 현대적 연구 방법도 TDM 예외에 포함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 이러한 해석은 AI 연구와 개발에 더 넓은 자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2. 비상업적 연구의 정의 확장:
    • LAION이 상업 기업과 협력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비상업적 성격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 이는 학계와 산업계 간의 협력 연구에 대한 법적 보호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 순수 학술 연구뿐만 아니라 산학 협력 프로젝트도 TDM 예외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opt-out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해석: 비록 이 사건에서 LAION의 활동이 비상업적 과학 연구 목적의 TDM으로 인정되어 opt-out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이 판단은 더 넓은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 법적 해석의 유연성: 법원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식’이라는 요건을 기술 발전에 맞춰 유연하게 해석했습니다. 이는 법률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향후 상업적 TDM에 대한 영향: 비록 이 사건에서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이 해석은 상업적 목적의 TDM에 대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상업적 TDM의 경우 저작권자의 opt-out이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 저작권자를 위한 지침: 이 판결은 저작권자들에게 자신의 콘텐츠를 TDM에서 제외하고 싶다면, 웹사이트 이용약관에 명확한 언어로 이를 명시할 수 있다는 지침을 제공합니다.
    • 기술 기업들에 대한 영향: AI 및 데이터 마이닝 기업들은 이제 웹사이트의 이용약관을 더욱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할 수 있습니다.
  4. 저작권법과 기술 혁신 간의 균형:
    • 이 판결은 저작권 보호와 기술 혁신 촉진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권리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AI와 데이터 과학 발전에 필요한 법적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향후 전망

이 판결에 대해 크네슈케는 항소할 수 있으며,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상급 법원이나 유럽사법재판소(CJEU)까지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이 판결은 다른 EU 회원국들의 유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은 AI 시대의 저작권 보호와 기술 혁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법적,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법적 판단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 AI 기업에 대한 시사점

이번 판결은 독일의 사례이지만, 국내 AI 기업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1. 상업적 목적의 TDM: 이번 판결은 비상업적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상업적 목적의 TDM도 일정 조건 하에서 허용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다만, 상업적 TDM의 경우 저작권자의 opt-out 권리를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2. 데이터 수집 방식: AI 기업들은 데이터 수집 시 웹사이트의 이용약관을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합니다. TDM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면, 이를 존중해야 할 수 있습니다.
  3. 연구 협력: 비영리 연구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데이터셋을 구축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이는 법적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4. 투명성과 윤리: AI 모델 개발 과정에서의 데이터 사용에 대해 투명성을 유지하고,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잠재적인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5. 국내법 개정 대비: EU의 저작권 지침과 유사한 법률이 국내에서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AI 기업들은 이러한 법적 변화에 대비하여 자사의 데이터 수집 및 사용 정책을 미리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AI 시대의 저작권 보호와 기술 혁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법적,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국내 AI 기업들도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를 주시하며, 책임 있는 AI 개발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입니다.